부제학 김인흠(金寅欽)
부제학
김인흠 선생은 풍산김씨 심곡파 후손으로 자는 희빈(羲賓,) 호는 석린(石隣) 현재 대구 칠곡 웃갓 문중의 선조이십니다.봉화군수,
상주군수를 역임하시고 소수서원 원장을 역임하셨으며 종이품 가선대부 규장각부제학에 이르렀 습니다.
선생은
봉화 군수로 재직 시 춘양면 석현동 일대에서 생산되는 한지 납품을 면세하였으며 목민관으로 선정을 베푸셔서 상주군수로 가신 후 봉화
석현리에 선정비가 세워진 바 있습니다. 원래 비석이 있던 곳은 봉화군 춘향면 석현리 국도 옆이었으나 이번에 봉화군 춘향면 각화사 입구
공원으로 이설하게 되었습니다. 각화사는 태백산 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선생께서 태백산 사고가 낡아 조정에 건의하여 사고를 중건한 바
있습니다. 또 선생은 선친의 아호 학남(鶴南)을 딴 ‘鶴南幽居’ 현판을 만들어서 오미동 본가로 보냈으며, 이 현판은 지금도 영감댁
사랑마루에 걸려 있습니다.

석현리 국도 옆에 있던 비석

각화사 주차장에 옆에 세워진 모습



비석 안내문

비석 안내문

고유를 하는 부제학의 증손자 김후섭, 김계섭 씨
운정집에 실린 부제학이 쓰신 운정 장승원(張承遠 : 1853~1917)
만사를 한 수 옮긴다
( 번역 실력은 부족하지만)
文康古宅壽同鄕 문강의 옛집 수동향에
蘿月遺風復襲芳 은자의 유풍, 꽃다운 향기를 입어
玉局詩文蘇學士 옥국의 시문은 소동파이고
金章富貴郭汾陽 금장의 부귀는 곽분양일세
傷心少別猶悽黯 슬픈 마음에 잠시 이별이 오히려 비통하고
回首重泉遽杳茫 머리 돌려 황천을 바라보니 아득하구나
忝郡周旋宣化日 군수가 되어 주선하며 선정을 배푸신 날
白頭桑海尙難忘 흰 머리 상전벽해가 되어도 잊을 수 없네
文康古宅: 여헌 장현공의 시호가
문강임, 즉 문강고택은 작자 장승원의 본관인 인동을 가리킴
壽同: 칠곡군 약목면. 부제학이 살던 곳은 칠곡 웃갓이며, 인동이나 약목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
蘿月: 등나무에 걸린달, 은자의
거처
玉局:도가의도관, 홍문관 (여기서는
홍문관으로 봐야할 것 같음)
蘇學士: 소동파, 본명은 소식,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여기서는 장승원을
찬양함
金章: 고관대작을 말함
郭汾陽: 이름은 자의(子儀), 당(唐) 나라 현종(玄宗)ㆍ숙종(肅宗) 때
사람. 한 몸으로 천하의 안위를
맡게 됨이 20여 년이었으며 벼슬이 태위(太尉) 중서령(中書令)에 이르렀고 분양군왕(汾陽群王)을
봉하여 세상에서 郭汾陽이라 명칭한다. 여기서는 장승원을 찬양함
重泉: 저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