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당선생문집 (悠然堂先生文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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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지 내 용
 
서명   유연당선생문집 (悠然堂先生文集)
 
저자 성명 김대현 (金大賢)
 
희지 (希之)
 
유연당 (悠然堂)
 
판사항   木活字本
 
발행년   19세기
 
권수   4
 
책크기   31×20㎝ 
 
사부분류   별집류
 
『유연당선생문집』은 조선중기의 학자 김대현(金大賢 ; 1553~1602)의 시문집이다. 김대현의 자는 희지(希之), 호는 유연당(悠然堂),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는 미상이나, 고종연간에 간행된 듯하다. 이 중 잡저의 「기군문잡사(記軍門雜事)」는 1598년(선조 31) 명나라 장수 형개(邢?)의 접대낭청(接待郞廳)에 있을 때 겪은 일을 기록한 것인데, 명군(明軍)들이 관왕묘(關王廟)에서 제사 지내고 승리를 다짐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장면과 군문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체로 상세히 기술하였다. 「기일본사(記日本事)」는 도요토미(豊臣秀吉)에 얽힌 일본의 야사를 들은 대로 적은 것이다. 「양명후세변후설(揚名後世辨後說)」은 남의 나라를 침범하고도 후세에 이름 남기는 것을 장한 일로 착각하고 있는 왜장들의 비뚤어진 생각을 통렬하게 책한 변설로, 최치원(崔致遠)의 「격황소문(檄黃巢文)」을 연상하게 하는 문장이다. 이밖에도 서(書)중 도체찰사 이원익(李元翼),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 의병장 김면(金沔) 등에게 보낸 서찰과 소의 「척화소(斥和疏)」·「청회복구란소(請恢復救亂疏)」등은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온 명나라 장수들의 전쟁수행상황과 왜란사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김대현은 농중(農中)의 아들로 안동(安東)에서 살았다. 그는 1582년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뒤 여러 번 응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591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묘살이를 하였고 이덕형(李德馨)과 김륵(金?)이전랑(銓郞)으로 있을 때 천거로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에 제수되었다. 부임 당시는 전란을 겪은 후였기 때문에 백성들의 어려움이 날로 심각하였는데, 그가 기근을 구제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아 뒷날 그곳에 불망비(不忘碑)가 세워졌다. 1598년에 사도시직장(司導寺直長)이 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그 뒤 예빈시주부(禮賓寺主簿)에 승진되었다. 산음현감(山陰縣監)에 재직할 때는 폐허된 문묘(文廟)를 중건하여 문풍을 진작시켰으며, 그곳에서도 백성들의 추위와 굶주림을 구제하였다. 1620년에 그의 다섯 아들의 등과(登科)로 인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追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