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와선생문집 (忘窩先生文集)

서지내용
 
서명   망와선생문집 (忘窩先生文集)
 
저자 성명 김영조 (金榮祖)
 
효중 (孝仲)
 
망와 (忘窩)
 
판사항   木版本
 
발행년   1775
 
권수   6
 
책크기   32×21㎝ 
 
사부분류   별집류
 
기타사항    
 
『망와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김영조(金榮祖 ; 1577∼1648)의 시문집이다. 김영조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효중(孝仲), 호는 망와(忘窩)이다. 산음현감 대현(大賢)의 아들이며, 김성일(金誠一)의 사위이다.

이 책은 1775년(영조 51) 그의 5세손 행원(行源)·택원(宅源) 등이 유문을 수집하여 이세택(李世澤)의 교열을 거쳐 편집, 간행한 듯하다. 문집 가운데 잡저의 「대북도유생정북백서(代北道儒生呈北伯書)」는 영남사람 정명시(鄭明時)가 자기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사람을 죽여 살인죄로 귀양을 갔으나 그 진상을 살펴보면 효도에 가깝다는 내용으로, 유생을 대표하여 도백(道伯)에게 보낸 변호진정서로서 명문이다. 「유청량산록(遊淸凉山錄)」은 유진·김령(金?)과 함께 경상북도 봉화에 있는 청량산을 구경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신라 때 김생(金生)이 10년 동안 글씨공부를 하던 김생굴(金生窟) 등 고적을 소개한 명문으로 일기체로 되어 있다. 「서정록(西征錄)」은 1623년(인조 1) 모문룡(毛文龍)을 만나려고 평안북도 철산의 가도(?島)에 들어갔을 때의 일을 기록한 일기이다.

9형제중 5명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1601년(선조34)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2년(광해군4)에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를 거쳐 전적에 승진하였으나, 당시 혼란한 정치를 보고 10여년간 은거생활을 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복관되어, 정언·지평·부수찬령 대사헌·대사성·대사간·부제학·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여섯 차례나 어사로 나갔다. 1624년에 지평으로 있으면서 대사헌 정엽(鄭曄), 대사간 이현영(李顯英) 등과 함께 인성군공(仁城君珙)이 이괄(李适)의 난에 관여하였다고 처벌할 것을 주장하였다. 1625년에 장령으로 있으면서 목성선(睦性善)의 상소내용이 경망하다 하여 처벌할 것을 주장하고, ″인성군공은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모할 때 동조하였고, 또 이괄의 난에 내응하여 자식과 신하의 도리를 벗어났으니 처형해야 마땅하다.″고 또다시 주장하였다. 1633년에는 세자책봉을 주청하기 위해 주청사(奏請使) 한인급(韓仁及)과 함께 부사로 중국에 다녀왔으며, 그 공로로 노비 3구와 토지 10결을 하사받았다. 1642년에 이조참판으로 있으면서, 취재(取才) 때 인사 부정이 있었다 하여 사간원의 탄핵을 받고 파직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