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산문집 (獨山文集)

서지내용
 
서명   독산문집 (獨山文集)
 
저자 성명 김종규 (金宗奎)
 
성문 (聖文)
 
독산 (獨山)
 
판사항   石版本
 
발행지    
 
발행자    
 
발행년   1974
 
권수   4
 
책크기   19.5×29㎝ 
 
사부분류   별집류
 
기타사항    
 

『독산문집』은 조선 말기의 학자 김종규(金宗奎 ; 1765∼1830)의 시문집이다. 김종규의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문(聖文), 호는 독산(獨山), 아버지는 상진(相辰)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계중(啓中)의 딸이다. 김계원(金繼源)의 문인이다.
이 책은 1974년 6대손 시재(時在)에 의하여 편집, 간행되었다. 문집 가운데 소의 「겸암유선생증작시소(謙庵柳先生贈爵諡疏)」는 증이조참판인 유운룡(柳雲龍)이 학교를 일으키고 절의를 숭상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많은 전략을 상주(上奏)하여 선조가 가납(嘉納)하였고, 이황(李滉)의 문고(文稿)를 문인들 집에서 수합하여 전서(全書)를 만든 공로는 특별히 증작(贈爵)과 증시(贈諡)를 받을 만하다는 내용이다.
잡저 중 「천리인욕동행이정변(天理人欲同行異情辨)」은 어린아이가 포복(匍匐)해서 우물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진정에서 나오는 것은 천리(天理)이고, 두렵고 불안한 가운데 칭찬을 구하고 그 아이의 부모와 사귈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욕(人欲)이며, 소가 떨면서 죽을 곳에 가는 것을 보고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천리이고, 측은한 마음이 있는 가운데 재물을 아껴 작은 것으로 바꿀 마음이 생기는 것은 인욕이라 하면서, 이 두가지 사이에 인욕을 따라 보상을 바라는 병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다.「정비변사문(呈備邊司文)」에서는 읍(邑)의 민폐를 조적·호적(戶籍)·전결(田結)·군포(軍布) 등 네가지로 나누어 지적하고 시정을 촉구하였다. 「정부백문(呈府伯文)」은 풍산(豊山)의 창고가 저습지대에 위치하여 있으니 빨리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1810년(순조 10)에 사마시와 동당초시(東堂初試)에 합격, 성균관전적에 오르고, 이어 사헌부감찰에 오르고 사간원정언에 제수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1829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중용』·『대학』의 주서(朱書) 등을 강론하면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는 특히 『심경』·『근사록』을 깊이 연구하여 「심경질의(心經質疑)」·「용학질의(庸學質疑)」를 기술하였다.